돌맹이 하나 없이 차분한 해변가였다.

바다에 떠있는 것은 사람을 포함해서 튜브도 쓰레기도 없었다.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단단한 글라스처럼 투명했고, 맑은 하늘빛은 짧았고 짙은 남색의 광목천 같은 바다였다.

바다의 끝에 가장 가까이 서서 발 끝 부터 수평선까지 봤다.

발을 바닷물에 담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곧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이 빠질 때를 기다렸다 물이 빠진 만큼 들어가본다. 다시 내 발 끝에서부터 바다가 시작된다.

바닷물이 차오를때 뒷걸음 친다. 반복해도 발은 젖지 않고 바닷물이 우숩다.

결국 늑장을 부리다 바다에  빠졌다.

사파이어 글라스 안에 두 발목이 갇힌것 처럼 보였다. (거대한 손목시계-사파이어 글라스로 된-위에 두 발목이 갇힌 채 우뚝 서있는 기분이었다)

내 옆에 있던 것이 애완동물 이었는지 사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바다에서 빠져나와 샤워를 하고 다른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간이 샤워실에 줄을 섰는데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았다. 한 줄이었던 것이 두줄로 됐다. 그 줄이 꺽이면서 줄의 의미가 없어졌다. 앞 사람이 새치기를 했다. 새치기 당한것이 억울한것이 아니다. 앞 사람까진 신식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신식으로 고쳐질' 샤워실로 입장했다. 나는 공동 샤워실의 칸막이가 아무리 구식이라 해도 나무 판자로 되어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마져도 생각하지 못하게 했던건 남녀 동용 샤워실이었다.


샤워실에서 나오자 싸움 중이란걸 알았다. 복사-붙여넣기성애자가 한것처럼 사람이 많았다.새로운 판타지 영화를 찍어도 될 정도의 솜씨다.그리고 누가 나에게 여기로 와서 마법을 쓰라고 소리쳤다. 싸우는 것있지 놀이인지 구분이 안갔던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중세 유럽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난 당연히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아군은 수가 적기 때문에 치고 빠지기를 찰지기 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미래를 보는 내 동료는 내가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미래를 보지 못하게 된 모양이다.

오라고 하면 뛰어오고 가라고 하면 다시 뛰어갔다. 오가며 들은 소문으로는 흰 분이 많이 있는 곳에 제시간에 도착하면 아군이 베이스캠프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흰 분이 내 손바닥 만큼 있다는건지 훌라후프 만큼 있다는건지 알 수 없었다.

미래를 보는 내 동료가 적장과 대치하고 있었다. 무기를 만든다기엔 그 무기에 맞아도 진심으로 안아파 보일것 같았다. 적장과 대치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차량저지대(나무로 된 삼각 기둥을 옆으로 뉘인 모양)와 씨름을 하고 있는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차량저지대를 나름대로 재탄생 시킨 미래를 보는 동료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아군을 구해줄 방법이(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 차량저지대로  내가 마법을 부릴것이라고 했다. 상황이 급했기 때문에 친구에게 달려갔다. 적장은 내가 차량저지대로 수만에 가까운 적군을 무찌를 것에 대해 견제하는 눈빛을 보냈다. 친구는 그래,어서 내게 달려와. 차량저지대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어서 망가진(일부러 망가뜨린) 차량저지대로 이곳을 벗어나자.마법을 쏴.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그날 나는 바다에 가서 놀다가 샤워를 대충 했고 여전히 가벼운 여름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마법을 쓸 줄 모르는것이 동료에게 마법처럼 느껴지리라 생각했다. 그때 같이 우왕좌왕했던 아군이 뒤에서 소리쳤다.흰 분이 있는 곳을 찾았고 지금이 바로 돌아가야하는 시간이라고. 중간에 있던 나만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적장과 대치하고 있는 아군은 아직도 마법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달려서 아군에게 말했다. 흰 분을 찾았고 지금 돌아갈 시간이 됐으니.

빨리 뛰어!


Posted by with_the_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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